〈술래게임〉을 처음 들은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피의 게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같은 현정완 PD의 작품이고, 빠니보틀·박지민처럼 〈피의 게임〉을 경험한 참가자도 출연한다.
그런데 〈술래게임〉은 〈피의 게임〉의 다음 시즌이라기보다, 현정완 PD가 오래 가져온 다른 욕심에 가깝다. 머리를 굴리는 서바이벌에 도망치고 쫓는 몸의 긴장을 넣어보고 싶었다는 욕심이다.
〈술래게임〉을 처음 들은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피의 게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같은 현정완 PD의 작품이고, 빠니보틀·박지민처럼 〈피의 게임〉을 경험한 참가자도 출연한다.
그런데 〈술래게임〉은 〈피의 게임〉의 다음 시즌이라기보다, 현정완 PD가 오래 가져온 다른 욕심에 가깝다. 머리를 굴리는 서바이벌에 도망치고 쫓는 몸의 긴장을 넣어보고 싶었다는 욕심이다.
〈피의 게임〉의 인물들은 대체로 한 공간 안에서 싸웠다. 누가 좋은 방을 차지하는지, 누가 정보를 독점하는지, 누가 다른 사람을 고립시키는지가 중요했다.
그곳에서 권력은 쉽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다들 그 사람의 눈치를 봤고, 누군가는 필요한 정보를 한 장 쥐고 판 전체를 흔들었다. 그래서 〈피의 게임〉의 재미는 “누가 제일 똑똑한가”보다 “누가 가장 늦게 본심을 들키는가”에 있었다.
〈술래게임〉도 사람을 읽고 의심하는 게임이다. 다만 인물들이 더 이상 한 장소에 앉아 오래 계산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누군가를 놓치고, 숨이 찬 상태에서 바로 다음 선택을 해야 한다.
〈술래게임〉에는 추격전이 중심에 놓여 있다. 참가자들은 단순히 문제를 풀지 않고, 뛰고, 숨고, 쫓고, 도망친다.
이 차이는 꽤 크다. 회의실에서는 말을 고르고 표정을 관리할 시간이 있다. 하지만 추격전에서는 평소 감추던 습관이 먼저 튀어나온다. 누구는 동료를 두고 먼저 달아날 수 있고, 누구는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을 챙길 수 있다. 머리로 만든 캐릭터보다 몸이 먼저 본성을 말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피지컬이 좋은 참가자가 처음에는 유리해 보여도 끝까지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너무 빨리 앞서가는 사람은 의심을 받고, 너무 조용한 사람은 술래처럼 보일 수 있다. 체력은 생존의 조건이지만, 신뢰는 생존의 비용이다.
〈피의 게임〉에서 배신은 보통 거래와 투표, 자원 배분의 언어로 나타났다. 반면 〈술래게임〉에서는 누군가의 행동 자체가 곧 의심의 근거가 된다.
왜 저 사람은 저쪽으로 뛰었을까. 왜 굳이 지금 혼자 움직였을까. 왜 저 사람을 잡지 않았을까.
술래는 정체를 숨긴 채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어야 한다. 다른 참가자들은 술래를 찾아야 하지만, 잘못 지목하는 순간 관계가 먼저 무너질 수 있다. 즉 이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건 “누가 거짓말을 했나”만이 아니다. 누가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처럼 보이게 만들었나가 더 중요하다.
현정완 PD가 〈피의 게임〉에서 잘했던 건 참가자들을 단순한 게임 플레이어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과 위험한 사람으로 동시에 만드는 일이었다.
〈술래게임〉은 그 압박을 더 빠르게 만든다. 믿을지 말지 오래 고민할 수 없고, 팀을 만들더라도 바로 흩어질 수 있다. 뛰는 순간에는 동료가 필요하지만, 게임이 멈추면 그 동료가 술래일 수도 있다.
〈피의 게임〉이 방 안에서 천천히 끓는 불신의 게임이었다면, 〈술래게임〉은 그 불신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는 게임에 가깝다.
• 누가 가장 빠른지보다, 누가 가장 오래 의심받지 않는지
• 누가 체력이 좋은지보다, 누가 위기에서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지
• 누가 술래인지보다, 누가 술래가 아닐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지
• 추격전이 끝난 뒤 누가 관계의 주도권을 가져가는지
참고한 공개 자료